김정희 /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 김정희
어려운 외국어 신조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새말 모임의 성과물을 이 지면에 소개한 지 어느덧 1년이 돼 간다. 그간 스무 개가 조금 넘는 우리말을 이 지면을 통해 선보였다. 그런데 이번처럼 언론에서 우리말 설명을 각양각색으로 덧붙인 외국어는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많이 쓰이고는 있으되 우리말로 표현하기는 까다로운 용어라는 얘기다. ‘피크 아웃’(Peak Out)이 주인공이다.
‘피크 아웃’이란 고점(peak)을 찍은 뒤 빠져나온다(out)는 뜻으로, 경기나 주식이 최고점을 찍고 하락 국면에 접어드는 상황을 일컫는다. 영어의 뜻 자체만으로는 경기나 주식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몸 상태나 운동 기량 등 여러 방면에서 최고 상태를 기록하고 내리막에 막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 용어로만 사용되는 편이다. 반대말은 ‘보텀 아웃’(bottom out). 흔히 ‘바닥을 쳤다’는 식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피크 아웃’이 우리 언론에 처음 쓰인 시기는 2000년으로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다. “경기 주도 업종의 재고순환으로 볼 때 경기는 이미 정점에서 내려가고(Peak-Out) 있으며 늦어도 3분기 중에는 피크 아웃할 것으로 예상된다.”(머니투데이 2000년 8월) 우리말 설명 뒤에 영문으로 ‘peak-out’이라는 표현을 괄호 속에 제시하고, 다시 문장 뒤에서 우리말 발음을 반복해 배치한 셈이다.
이후 20년 동안 주로 경제지나 종합일간지 경제면에서만 주로 쓰였는데도 검색 수가 무려 5만번이 넘었으니 실로 많이 쓰이기는 했지만, 정착된 우리말 순화어는 없다. 그래서인지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다양한 우리말 설명이 붙었다. ‘정점 통과 후 하락’, ‘고점 대비 하락’, ‘고점을 치고 둔화되는 것’, ‘정점을 지나는 것’, ‘고점을 친 것’, ‘하강 기미를 보이는 것’, ‘최고 시세까지 올라 더이상 오르지 못함’, ‘고점 후 하락세 돌입’ 등등.
가만 살펴보면 우리말 설명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기업 이익이 정점이라는 피크 아웃’(연합인포맥스 2009년 10월), ‘정점에 이르고 있는 피크 아웃 상황’(뉴스토마토 2022년 11월)은 정점에 올랐다는 상황을 주로 강조하고 아직 하강 국면에 접어들지 않은 것처럼 표현한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추진력이 떨어지는 피크 아웃’(머니투데이 2010년 9월) 식으로 정점에 대한 언급 없이 하락 국면만 강조하는 표현도 있다.
한 개 혹은 두 개 단어로 이뤄진 우리말 표현만 살펴보아도 여러 가지 조합이 뒤섞여있다. ‘고점 도달’, ‘경기 정점’, ‘정점(고점) 통과’, ‘하락 전환’, ‘고점 후 하락’ 등이 그것이다. 한편 “반도체 업황의 고점(peak out) 우려”처럼 아예 한 단어로 대체한 경우(한국경제TV 2018년 7월)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고점’ 혹은 ‘정점’ 같은 표현은 ‘벗어났다’는 뜻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부적절한 쓰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새말모임 위원들도 ‘피크 아웃’이라는 용어가 품고 있는 여러 상황 중 어떤 성격을 강조할 것인가 고심한 끝에 ‘고점을 지났다’는 상태를 나타낸 ‘고점 통과’와 ‘탈정점’, 그리고 ‘내리막이 시작됐다’는 상황을 강조한 ‘하락 전환’이라는 세 개의 말을 후보로 정했다. 굳이 용어가 아니라도 ‘정점을 찍고 내리막이 시작됐다’는 문장으로 풀어 써 주는 것이 말 자체도 쉽고 뜻을 전달하는 데도 유리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용어로서 다듬은 말의 실제 쓰임을 고려할 때 간결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쉬우나마 명사형 단어 조합을 찾아낸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은 ‘하락 전환’에 80%가 넘는 지지를 함으로써 이 같은 시도에 호응했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