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 김정희
새말 모임에서 다듬을 말 목록을 받으면 일단 풀이를 보지 않고 외래 용어만 읽은 뒤 뜻을 가늠해 보곤 한다. 대중문화에 과문한 탓인지 이번에 다룰 ‘헤드라이너’(headliner)라는 단어를 보고는 공연문화와 관련된 표현이라고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신문 표제(headline)에 등장한 유명인사’ 혹은 ‘신문 표제 기사를 쓴 기자’ 정도를 떠올렸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절반만 맞았다. 위 두 개의 짐작 중 후자의 뜻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듬을 말은 그 의미로 쓰인 게 아니었다. ‘행사나 공연 등에서 가장 기대되거나 주목받는 출연자, 또는 그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보통 공연의 최고조에 등장해 무대를 장식하거나, 공연을 홍보할 때 가장 크게 부각되는 출연자, 혹은 출연진을 일컫는다. 영어사전에서 ‘신문 표제를 쓴 기자’ 다음으로 소개된 우리말 해석이 바로 이 뜻이었다.
‘헤드라인’은 신문의 표제어라는 명사로 쓰이는 것 외에도 ‘공연 등에 주요 출연자로 나오다’는 뜻의 동사로 쓰인다. 여기에 ‘~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er’을 붙인 게 ‘헤드라이너’다. 공연을 소개하는 안내 전단지에서 제일 큰 글씨 혹은 제일 돋보이는 사진으로 실리게 되는 인물이니 매체만 신문이 아닐 뿐 ‘표제에 등장한 유명 인사’라는 뜻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표현이 우리 언론에 등장한 연혁은 제법 길다. 1999년 연합뉴스의 어느 록 음악제를 소개하는 기사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는 ‘주 공연자’라는 설명이 괄호 안에 붙었다. 이후 이 단어는 몇 년간 언론 기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2004년 이후 자주 등장했다. 이때부터 기사에 나타난 우리말 번역은 다양하다. ‘주 공연자’라고 풀었다가 ‘주 공연팀’, ‘대표 가수’, ‘주역’, ‘대표 출연자’ 등 시기에 따라, 언론사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그 외 ‘간판 출연자’, ‘주요 출연진’, ‘대표 음악가’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가 하면 ‘가장 좋은 무대를 장식하는 팀’, ‘대형 공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인 밴드’ 등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해 준 기사도 보였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헤드라이너’라는 단어를 쓰면서 아예 아무런 우리말 설명을 붙이지 않은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미 모든 독자가 이런 단어의 뜻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거나, 문맥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일까. 그런데 여론조사 응답자 중 68.9%가 이 단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 모든 이들이 이 단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해도 되도록 우리말 표현을 갈고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헤드라이너’를 갈음할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은 무엇일까. 새말 모임의 우리말 다듬기는 외래 용어를 대신해 쓰이는 대체어가 있는 경우 그들 중 쓰임이 많거나 뜻이 가장 잘 전달되는 것을 골라내는 데서 출발하곤 한다. 대체해 사용한 표현이 없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채택하기도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우리말이 있다면 이를 최우선으로 검토해 보는 것이다.
‘헤드라이너’의 경우 이미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많은 순화어 후보들이 사용된 터라 새말모임 위원들은 이들을 먼저 살펴보았고, 그 가운데 ‘대표 출연자’와 ‘간판 출연자’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후보로 ‘핵심 출연자’도 함께 제시했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2.5%가 가장 적절하다고 선택한 ‘대표 출연자’가 최종 다듬은 말로 결정됐다.
‘헤드라이너’를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는 ‘신문 기사 표제를 쓰는 기자’라는 설명은 안 보이고 ‘자동차 지붕의 내부 천덮개’라는 뜻이 대신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말 검색을 해봐도 신문 관련 용어는 거의 찾을 수 없고 자동차용품으로 심심찮게 검색된다.
한편 중국어에서 헤드라이너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찾아보면 ‘터우파이’(?牌)라는 번역이 자주 발견된다. 과거 중국에서는 고전극을 공연할 때 출연자 이름을 팻말에 써서 걸어 놓았는데, 그중 맨 앞에 걸어 놓은 팻말이 바로 ‘토우파이’이며, ‘주연’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맨 앞자리’라는 뜻에서 동서고금이 이래저래 비슷한 용어를 쓰는 셈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